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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1 14:52

뒷북을 치며 - 영화 <디워>

 

 똠방은 요즘 정신이 없다. PD는 프로그램을 방송 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이른바 '정산'이라는 게 있다. 여의도의 PD들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런 작업이 바로 정산이다. 특히 서슬이 시퍼런  회계 감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엔 그 고통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여유가 있다면 회계 업무 전문인에게 맡기면 되는데, 독립PD는 스스로 발품을 팔아야 하는지라 영락없이 똠방의 몫이다. <천상고원 무스탕>은 연출자로서 행복한 작업이었다. 물론 기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촬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쉬운 행복감을 누릴 수 있었다.

 

 허나 정산 작업은 그 아쉬운 행복마저 앗아버리고 있다. 사실 하고 나면 별 것이 아닌데, 숫자 놀이에 영 익숙지 않거니와 정말 하기 싫은 놀이다. 똠방의 머리 터짐과 지리멸렬은 리마주 25의 작업실을 탁하게 만든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작업실에 찾아 온 지인들에게 미안하다. 또한 지난 1주일 동안 똠방에게 전화를 걸었던 지인들에게도 미안하다. 신경이 날카로운 탓에 한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점 이해를 부탁한다.

 

 이렇게 하기 싫은 정산 작업을 하는 와중에 지난 해 논란의 광풍을 일으켰던 영화 한 편을 봤다. 그것은 심형래 감독의 <디워>다. 그리고 디워의 논란 한 가운데 놓였던 꽤 진지한 글들을 읽게 됐다. 아래의 글은 <천상고원 무스탕>의 정산 작업을 하면서 보게 된 영화 <디워>의 뒤늦은 소감과 광풍에 대한 씁쓸한 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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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스러워진다.이미 한번 휩쓸고 간 광풍의 잔해가 아직 씻기지도 않은 상태다.뒤늦게 광풍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마른 짚단을 안고 불 섶에 들어가는 무모함과도 같다. 그것은 양비론 양시론이 아니라, 명확하게 한 쪽 입장에서 쓰는 글이기에 더욱 그렇다. 현학적인 수사로 채우지 않겠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외부로 부터 논리를 끌어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내가 봤던 느낌 그리고논리의 회로를 통해 인지했던 대로 쓸 것이다.

 

 <디워>의 광풍이 한창이던 때,똠방은 네팔의 히말라야 오지에서 문명과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네팔에 머물었던 기간은 석 달이었다. 지난 해 9월 말, 한국에 들어와서야 <디워>의 개봉 소식과 8백만이란 관객이 영화를 봤다는 이야길 들었다. 또한 비정상적인 광풍도 크게 한번 휩쓸고 지나갔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영화였기에, 광풍과 같은 논란을 낳았고 심지어 MBC의 <100분토론>에도 올랐을까? 관객800만이란흥행도 궁금했다. 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다큐멘터리<천상고원 무스탕>의 편집 작업에 들어가야 했기에 궁금함을뒤로 미뤘다. 그리고 '디워'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의 메모에서 지워졌다.

 

 그래도 지인들을 통해 영화 디워의 광풍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귀동냥하듯 띄엄띄엄 들었다. 대부분은 앞 뒤 잘린 조각이었다. 대중의 광기와 폭력에 치를 떨며 말해주는 이도 있었고, 이송희일 진중권 등을 천하의 왕싸가지라고 침 튀기며 흥분하는 이도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문화 사회학을 전공한 지인에게 물었다. 그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별 관심을 두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역시 광풍이 한창일 땐 국내에 없었단다. 그는 단지 이런 이야길 내게 들려줬다."평론가라고 불리는 엘리트 지식인 사회에 대해실망하고, 분노한대중의 봉기"그가 똑 꼬집어 단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분석이 가능하다고 흘리듯 말했다. 놀랐다. 영화 한 편에 대한 광풍도 신기했지만, '지식인 사회에 대한 대중의 봉기'란 분석(?)은 반드시 영화를 관람해야겠다는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는 가운데 5일 전, 영화 <디워>가 수중에 들어왔다. 똠방의 작업실 리마주 25엔 꽤 그럴듯한 컴퓨터와 모니터 그리고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다큐멘터리영상 편집을 하는 장비들이다. 영화를 봤다. 음향은 Boss 902  스피커에 5.1 채널 홈씨어터용 스피커를 함께 물렸다. 모니터는 30인치 와이드다.(모니터는 보다 좋은 관람을 위해 근처 편집실에서 '애플 시네마'로 빌렸다.)  가능하면 영화관과 같은 조건에서 볼 요양으로 모든 전등을 껐다. 음향을 엄청나게 올렸다. 영화는 CG의 강력한 에너지로 이무기의 괴성과 함께 리마주 25의 작업공간을 빵빵 울렸다. 90분이란 시간이 흘렀다. 영화가 끝났다. 

 

 영화를 본 소감?재미있었다. 만약 딸아이와 손을 잡고 가서 본 영화였다면, 더 재미있게 봤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똠방의 딸은 아직 갓난아기다.

 

 허망함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논란의 광풍을 일으킨 영화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방학특선용 어린이 영화다. 여기서 주의할 게 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어린이 영화'란 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어린이 영화'라는 지적(?)에 꽤 자존심을 다치는 가 보다. <디워>를 '어린이 영화'라고 규정짓는 것은 영화가 유치하다고 비평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일부 비평에서 그런 논조를 드러나긴 했다. 그렇다고 대중의 광기를 자극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 <디워>는 더도 덜도 아닌 방학 특선용 어린이 영화다. 어른은 아이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 옵션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어린이 영화'에 취향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도 있을게다.똠방이 그런 어른 가운데 하나다. 이른바 '어린이'를 겨냥해 마케팅을 하는 영화를 거의 챙겨보는 편이다. 그런데 <디워>는 애매모호했다. 분명 아이들이 좋아하고 재미있게 볼영화임에 틀림없는 듯싶은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800만 이란 관객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요즘 같은 한 자녀 가정에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 이모가 모두, 아이 한 명에 손잡고 본 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800만이라니...

 

 영화는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장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놀이동산이란 산업이기도 하다. 또한 문화 산업이기도 하다. 영화 <디워>가 문화 산업이긴 하지만, 그냥 청룡열차 패러디였다.(인도에서 우리의 청룔열차하곤 차원이 다른 롤러코스터를 탄 적이 있는데,  딱 그정도였다) 놀이동산의 청룡열차에 예술적 가치를 묻는 것은 어폐가 있다. 하지만 청룡열차에 대한 놀이동산 전문가의 비평은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영화 <디워>에서 논란의 한 가운데 있었던 기자와 비평가라고 하는 이들은 어린이 놀이동산으로 <디워>를 비평하기 보다는, 성인을 기준으로 한 문화 예술이란 측면에서의 영화 <디워>를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대중이 분노했다는 비평을 찾아 읽었다. 일단 종이 매체든 인터넷 매체든 언론에 오른 비평은 늘 있었던 내용이었다. 일부에선 주례사도 있었고 일부 혹한 비평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른 영화 비평에 보였던 것처럼 늘 그런 표현 정도였다. 영화 <디워>라고 해서 뭔가 다른 특별대우 혹은 악의에 차고 조롱으로 가득한 비평의 흔적은 없었다.

 

 눈에 띠었던 것은 이송희일 감독의 글이었다.그는 가난한 독립영화 감독이다. 내가 여기서'가난'이란 단어를 애써 붙이는 것은 대중이 그를 충무로의 기득권 감독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송희일 감독의 블로그는 예전에 가끔 들러보던 곳이었다. 지금은 접근 불가지만, 다른 이가 옮겨 놓은 <디워>에 대한 이송희일 감독의 글 전문을 읽은 소감은,평소 그의 문투와 문체 그 이상이 아니었다. 이미 예전부터 영화에 대한 단상을 자신만의 특유한 어법과 냉소로 날렸던 독립영화 감독이었다. <디워>라고 특별히 무시됐거나 매를 든 건 아니었다. 그의 블로그에선 숱한 영화들이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디워> 대중이 거기에 흥분했다. 광기였다. 그에게 가혹한 린치를 가했다. 블로그에만 있었으면 별 일이 없었을 글인데, 모 기자가 그걸 기사화 한게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이다. 어느덧 앞뒤 앞가린 채 흥분한 대중은 이송희일 감독을 충무로의 기득권으로 규정짓고 심지어는 그의 성정체성 마저 거론하며 몰려가서 침을 뱉었다. 칼을 휘둘렀다.

 

(사실 이송희일의 글은 영화 자체를 겨냥한 조롱과 비판이라기 보다는, 떼거리로 린치를 가하는 무뢰배를 향한 쓴소리였다. 이 걸 덜 떨어진 기자 한 명이 기사화 하면서 싸움의 불을 질러버린 게다. 앞 뒤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이송희일은 정말 더러운 싸가지가 되고 만다 )

 

 이송희일 감독의 글이 처음부터 매스미디어에 올릴 작정으로 쓴 거였다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쓴 것일 뿐이다. 단지 그 것이 확대 재생산됐을 뿐이다. 그것은 본인의 의도가 아니었다. 인터넷이란 공간을 둘러보면, 누구나 다 알지 않은가? 블로그라는자신의 공간에서 비교적 격의 없이 때론 조롱하듯 냉소를 마구 뿌리는 글을 올리지 않던가. 블로그가 흥미있는 것은 메이저 지면을 통해 느끼는 것과 달리 서로 묘하게 오가는 감정의 배설로 인한 카타르시스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이는 일부분이겠지만 말이다. 이송희일은 영화감독이라고 하지만 대중이 기억도 하지 못하는 또 알지도 못하는 독립영화 감독으로, 튀는 블로거이상은 아니었다. 블로그에 공인 어쩌고, 예의가 아니라고 흥분하는 것은 넌센스다. 그 정도의 조롱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우리였던가? 그렇다면 린치를 가하는 대중은 뭐란 말인가?

 

 자 여기까지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른바 '디빠'라고 불리는 정체불명의 대중은 흥분하여 마녀 사냥을 하듯 횃불을 밝히며 숨어 지내던 이들까지 찾아내어 화형대에 올렸다. 지난 며칠 동안 지난 8월에 벌어진 일을 검색하면서 온갖 블로그와 사이트에서 읽은 대중의 <디워> 관련 글은 미국의 KKK와 집단 광기로, 히틀러에게 열광하는 나치 소년단과 다른 게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찼다. 거기엔 합리성과 논리 지성은 사라졌다. 심지어 대중의 광기를 옹호하기까지 하는 얼치기 칼럼리스트 글도 마찬가지였다. 난 이 게 신기했다. 그들의 글에 오른 댓글이다. "정말 논리적인 분석과 반박이네요."  여기서 논리와 분석은 행불자다.

 

 여기에 진중권이 나섰다.개인적으로 진중권에 대해서 똠방은 두 가지 입장이다. 그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하게 한다. 그의 글빨은 하늘이 내린 재능처럼 읽혀질 정도다. 그러나 한 편에선 '싸가지'란 코드도 작용한다. 다분히 무례하다. 그리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상대방을 쏴대고 조롱한다. 당하는 사람은논리가 맞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그런 진중권의 훅과 어퍼컷에 마음이 먼저 상한다. 이성과 감정이 일치되지 않고 따로 노는 셈이다.이성적 논리로는 그의 말에 공감하며 끄덕거리지만, 마음 한편에서 '씨불 넘'이란 억한 감정이 솟구친다. 이게 진중권의 최대 약점이며 또한 매력이다. 도발하는 자의 양면성. 물론 진중권이 먼저 도발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진중권을 보면 질투가 난다. 똠방과전혀 다른 견해와논리를 가지고 글빨을 날릴 땐, 짜증이 양동이로 쏟아지곤 한다.어찌됐든 그의 명징한 칼 같은 논법은 부럽기조차 한다. 다시 주의! 똠방은 진중권과 인터넷이나 기타 어떤 형식으로든 대면한 적도 없고 논쟁한 적도 없다. 단지 관전했을 뿐이다. 

 

 이제진중권은 집단적인 광기 현상에 비판하는논객으로서 뛰어든다. 그는 초기 논쟁에서 영화 '디워' 자체에 대한 거론은 일정 피하며 집단적인 현상에 대해서 언급하고 논쟁했다. TV토론에선 다분히 오버한 경향이 있긴했지만서도 말이다.진중권과 이른바 디빠들과의 한 판 전쟁이 벌어졌다. 뒤늦게 현상 파악을 위해 읽은 자료들이지만, 정말 엄청난 광풍이었다는 생각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피부로 느껴진다. 방학특선 어린이 영화 한 편을 놓고 말이다. (*주의 : 영화를 재미있게 본 이들의 많았다는 점이 광풍이란 뜻은 아니다. 여지껏 광풍의 의미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 논쟁의 과정엔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한 고민은 그다지 없었다. 진중권 진영에서 그러한 고민은 곳곳에서 드러나긴 했지만, 광기 어린 대중은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이미 편향된 대중에게 논리적 이해나 설득은 불가능해 보였다. 자신의 취향(?)을 비난한다는 정도의 편집된 내용에 대해 편협한 분노를 분출했다. 나름 뒤늦은 관전평을 한다면 그냥 진중권이 물러섰어야 했다. 횃불과 칼을 든 대중을 향해 훈계를 하는 것은, 불을 더 질러 버리는 것 이상이었다. 칼을 더 갈아 자신도 모르는 도륙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진중권의 경향으로 볼 때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대중 앞에 단신으로 전면에 섰다. 다들 떼거리 무뢰배들에게 쫄았을 즈음에 말이다.

 

 덜 떨어진 인간들이 몇있다. 변희재와 김휘영. 이 둘에 대해선 뭐라 평할 가치조차 없기에 언급조차 하지 않겠다. 이 둘의 문화 비평은 자뻑 코미디 수준도 안 되는 거였으니까. 아니 지금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게 보인다.김휘영의 메일 해킹 발언은 타임머신을 타고 달리는SF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그들이 짝짜꿍놀고 있는 웹에 가서 똠방이읽었던 글은 재활용조차 안 되는용도 폐기물이었다.  

 

 내가 뒤늦지만, 초기에 눈 여겨가며 읽었던 논객의 글이 있다. 강준만과 김규항이다. 이들에게서취향과 선빵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강준만은 부르디외까지 언급했다.<디워> 광풍에 대한 자료 읽기를 처음 시작하면서,가장 먼저 만난 게김규항이었다. 그의 촌철살인을 좋아하기에 자주 그의 블로그에 가곤 했다. 김규항은 내 즐겨찾기에 등록되어 있었다. 사통팔달 지식인이었기에 그의블로그에 가면 <디워>에 대한 비평을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곳에 <디워>가정말 있었다. 김규항의 글을 읽고 "아하! 평론가들과 진중권이 오버질 한 거였구나"라고 결론을 내렸다. 김규항이 링크로 걸어 놓은 강준만의 글도 읽었다. "그럼 그렇지." 거기서 끝났으면 '진중권'이란 이름은 강력한 편견과 선입견에 의해 '왕싸가지'란 도장이쾅 찍혔을지도 몰랐다. 대중의 광기어린 테러에 대해선 꺼림칙한 마음을 뒷주머니에 슬쩍 집어넣은 채 말이다.

 

 뭔가 찜찜했다. 똥간 가서 호박잎으로 뒤를 닦은 기분이다. 똠방은 화장지로 뒤를 닦아도 찜찜해 한다. 비데를 쓰냐고?  똠방은 비데를 구입할 정도의 경제력이 없다. 똠방의 뒤처리 방법은 인도식이다. 인도식이 뭐냐고? 토를 할지도 모르기에 설명하지 않겠다. 인간의뒤처리 방법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깨끗한 방법이란 말만 하겠다. 참고로 작업실엔 똠방이 쓰는화장지가 없다. 단지 이 곳을 찾는 지인을 위한 접대용 화장지만 있다.

 

 인터넷 검색으로 다른 글마저 읽어야 했지만, 일상의 바쁨은 도대체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찜찜함은 마르다 못해 똥딱지가 됐다. 털어 물로 씻어야 한다.미디어 몹을 통해 검색된, 네티즌 영화 기자라고 하는 블로거의 글을 뒤졌다. 그의 글은 기본적으로 심형래 감독의 <디워>에옹호적이면서동시에 대중의 광기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진중권에 대해선 강준만이나 김규항 보다 더노골적으로비판적이었고 그 내용이 많았다. 그 블로거의 글은치사하기만 했던김규항이나 강준만 보다 솔직했다. 진중권이 대중을 자극한 배경을 그 블로그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그의 글엔 어딘지 콤플렉스가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 대상은 진중권이었다. 그의 글은 일정 타당성 있는 논리로 펼쳐졌다. 그러나 끝에 가서 그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자해하며 슬그머니 논쟁에서 빠지고 있었다. 미심쩍었다.

 

 이제,똠방의 인터넷 검색을 통한 항해는 예상보다 길어지며 험난해진다. 그것은 풍랑 속에서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이었다. 검색이란 나침반이 있었지만, '디워'란 검색어는 너무나 많은 자료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찾은 게 김규항이 말한 '선빵'에 대해 지적한, 어떤 블로거의 방대한 글이었다. 김규항의 말대로 선빵은 영화 기자들과 평론가들이 날린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선빵은 이른바 '디빠'라는 선동 집단에 의해서였다. 그것은 의도되고 조작된 선빵이었다.

 

 기자와 평론가의 조롱과 혹된 비평에 <디워>를 보고 감동받은 대중이 봉기를 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미 봉기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시작됐다. <디워>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기자 시사회만 했을 뿐 일반인을 위한 시사회는 없었다. 개봉하기 전부터, 타깃으로 삼은 몇몇 필진에게 린치가 가해졌다. 그렇다면 그 대중은 누구였을까? 일반 대중은 아직 영화 <디워>를 못봤을텐데 말이다. 여기에 개봉 이후 이송희일 감독이 먹이가 된 것이다. 그런 다음, 그 광기에 사람들은 놀란다. 그들의 광기어린 테러와 린치에 누군가 나서야 했는데, 감히 나서질 못했다. 그냥 작은 목소리로 "이제 그만하세요" 했을 뿐이다. 이 대목에서 호통 치며 나온 게 진중권이다. 

 

 <디워>의 광풍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흥행 실패 이후, 진중권은 '디빠'를 향한 조롱을 날렸다. 거기에 김휘영은 근거도 없는 논리만 뻥뻥 날린다. 타임머신도 타면서 말이다. 지금도 김휘영의 놀이터에 가면 지능이 떨어지는 글이 새롭게 오른다. "이무기는 승천한다."라면서 말이다.

 

 광풍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하지만 영화는 관객 800만이란 기록을 남겼다. 숫자론 엄청나지만, 300억이 넘는 제작비 속에서, 돈을 챙긴 건 쇼박스다. 제작에 투자한 이들은 아직 쪽박으로 판단된다. 심형래 감독은 어떤지 모르겠다. 경제적으로는 대박이라 할 수 없겠지만, 800만 관객이란 힘은 그에게 차기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강력한 토양이 됐다. 이미 알겠지만 한국 영화 시장은 철저한 승자 독식이다.

 

 그렇다면 광풍의 최대 수혜자는 누굴까? 그것은 쇼박스와 심형래 감독이다. 그들은 광풍을 통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결과적으로 해선 안 될 마케팅을 한 셈이다. 그것이 의도 된 것이란 의심을 해보긴 하지만 실증이 없다. 광풍 속에서 대중을 잠재우지 않고 간접적으로 선동한 흔적만 보인다. 앞뒤를 재보니 그런 정황이 포착됐을 뿐이다. 그런 마케팅과 홍보 전략이 <디워>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이 전 부터 있었다. 그런데 <디워>는 성공했다. 문화 현상이란 측면에서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심형래감독은어느덧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대중에게 불어넣어 줬고, 불굴의 투지는 인간극장 같은 감동도 안겨줬다. 그 점은 분명 자랑스럽고 박수를 보내야 할 일이다.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심형래 감독은 한국의 대학생이 가장 존경하는 영화 감독 1위다. 하지만 심형래 감독은 순수하지 못했고 애국심으로 보이지 않게 대중을 선동했다. 또한 지나친 과장법 날리기와 거짓말을 숱하게 쏘았다.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스스로 '신파 다큐'를 만들어 징징거리며 이미 존재하고 있던 '심빠'들을 선동했다. 증거를 대라고 하는 '디빠'란 세력의 요구가 인터넷 곳곳에서 보인다. 그러한 요구만큼 그 증거는 너무도 많이 깔려있다. 신문과 잡지 그리고 방송에도 말이다. 심지어는 영화의 제작 크레딧에도 나오지 않던가.  

 

 2008년 벽두,  <디워> 광풍의 흔적을 되밟는 과정을 통해 실망하게 된 이들이 몇 있다. 다시 말하지만 김휘영과 변희재는 씹고 자시고 할 안주거리도 안 된다. 분명 치사했던 강준만과 김규항. 그리고<디워>를 “용녀의 귀환과 모성성의 재발견”이란황당 논리를 폈던 시인 김정란. 이들은 어찌됐든 괜찮았다. 그렇다고 대중을 직접적으로선동하진 않았다.

 

 지난 광풍에서 '횃불과 돌멩이를 던지라'고 선동한 이가 있다. 그는 바로 김동렬이다.서프라이즈의 김동렬은 이번 디워 사태를 똠방이 이해하기 전까진 꽤 괜찮다고 생각한 논객이었다. 그는 주지하다시피 노빠의 전위대며 황빠로서 대중을 선동했던 논객이다. 좌파를 향한 독설가이기도 하다. 동시에 조갑제에 대한 비아냥거림도 날린다. 지난 해 여름,<디워>의 광풍이 부는 과정에서 그는 공개적인 선동가였다. 그에게서 오히려 히틀러의 냄새가 났다."디워 전쟁이 시작되었다.충무로를 타격하라"- 데일리서프라이즈 08/07/2007 김동렬

 

 영화는 대중의 환타지다.인도이야길 해보겠다. 영화가 대중의 환타지란 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인도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영화는 대중이 꿈꾸는 신화다. 배우는 신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영화관은 그러한 신들의 신전이 된다. 또한 감독은 신을 재현하는 사제가 된다. 헌법에선 불법으로 규정짓고 있지만, 인도는 여전히 신분제가 강력한 사회 관습으로 남아있다. 그런 가운데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그래서 절망적인 대중은, 영화를 통해 신을 만나고 신화를 꿈꾼다. 영화는 그들에게 단순한 오락으로서의 놀이동산 차원을 벗어나, 신화의 환타지에서 만나는 신과 영웅의 세계다. 그들의 꿈에 어긋나는 영화 촬영장은 린치를 당한다. 대중의 취향을 거스르는 영화는 개봉하면서 바로 테러를 당한다. 

 

  지하 벙커에서 애인과 함께 권총 자살을 했던 인물이 있다. 그는 누구보다 영화광이었고 영화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다. 그래서 그는 대중을 위한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대중은 환상을 필요로 한다. 그들에게는 극장과 영화관 밖의 환상이 필요하다. 인생의 고통에 대해 그들은 겪을 만큼 겪었다.”  대중의 마음을 이해해주었던 그는 바로히틀러다.  이제 우리는 이걸 취향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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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치기몇몇 인터넷 기자와 일부 덜 떨어진 칼럼리스트 그리고 치사했던 논객과 선동가.이들의 스펙트럼은 놀라울 정도로 그 간극의 차이가 크다. 누구는 극우였고 누구는 중도보수였고 누구는 개혁진보, 누구는 B급 좌파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황당 무뢰란 것이다. 영화 <디워>라는 환타지 앞에서 그들은 유사한 목소리를 냈다. 나치 독일의 가톨릭 교회가 히틀러를 찬양하고 푸르트벵글러 같은 예술가가 히틀러를 위해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말한다. <디워>는 '애국심'에 의한 영화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심형래 감독의 오래전 인터뷰와 미국 현지에서의 인터뷰 기사는 뭐란 말인가?  히틀러와 심형래 감독의 '인생극장'은 뭐가 다를까?   물론 심형래 감독은 히틀러와 같은 잔혹 무도한 독재자가 아니다. 그러나 심형래 감독은 그의 영화 안에서 대중을 향한 문화의 독재자였다. 광적인 디워 옹호자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과 댓글들을 보면, 애국주의적인 감동의 물결이 춤추고 있음이 감지된다.

 

 우리가 독일 현대사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 어떻게 저런 희극적인 인물이 나치 독일의 독재자가 되어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는지. 바그너와 영화 그리고 미술을 사랑한 인물이 유럽을 2차 대전의 광풍으로 몰고 갈 수 있었는지... 독일인들은 그만큼 멍청했던 것일까?  

 

 영화는 재미있으면 된다.그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똠방 역시 영화 <디워>는 아이와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그렇다고 나는 디워를 애국심의 코드로 관람하진 않았다. 허나 문제는 영화의 마케팅과 대중이 날뛴 광풍의 과정에서 '히틀러'를 읽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것은 이미 월드컵과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 드러난 것처럼 파시즘의 전조가 된다. 그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그들 스스로도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사이에 말이다.방학 특선용 어린이 영화를두고 벌어진 광풍에서 파쇼의 전조가 감지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희극이다. 이것은 당대의 비극이다.    

 

 진중권은 광풍의 논쟁 과정에서 '디빠'로 불리는 일부 대중을 향해 조롱과 훈계를 날렸다. 일부에선 오히려 그것이 더 큰 광풍의 시작점이 됐다고 진중권을 나무란다. 그것은 사실이다. 똠방의 생각은 다르다. 그나마 광풍에 홀로 맞선 진중권의 도발이 있었기에, 우리는 IMF 이후 조용한 기류로 때론 애매모호한 격랑으로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했던 신파 같은 파시즘의 욕망이 드러났다고.... 어느덧 <디워>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괴수였다. 파시즘의 용으로 승천하기 위한...  이제 동심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만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선 그 어떤 행동이라도 해야 된다."누가 한 말일까. 히틀러다. 지난 해 8월의 광풍은 그들이 악이라고 생각한 소수를 향한 그 어떤 행동이었다. 참을 수 없는 독설과 비난이 그들이 믿고 추앙하는 영화와 인물에게 쏟아졌다 하더라도,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대응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분노했던 소수는 논쟁의 대상이지 테러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통령을 논쟁의 한 가운데 올려놓고 대중이 맘 놓고 씹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논쟁으로 씹는 것과 테러는 엄격히 다르다. 

 

 광풍에서 분노했던 대중은, 길거리에 자빠져 생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아직도 그대들은 다수는 항상 옳고 대중은 늘 정의롭다고 믿는가?  쇼박스와 심형래 감독에게 쓴 소릴 던진다."관객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

 

 

 

 궁금한 게 있다.

 대중을 움직인 괴벨스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그에게 한 수 배우고 싶다.

 

  

 

 

 

 

2008년 1월 20일

여의도 리마주 25에서 똠방이 쓰다.        

 

 

PS1: 참고로 영화 <디워>는 현재 DVD로 출시됐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구입할 수 있다. 똠방은 인터넷 쇼핑을 통해 2만3천원을 주고 구매했다.        

 

PS2: 지난 디워 광풍은 진중권을 가까이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인터넷을 통해선 물론이고 그의 TV 토론을 비롯해서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선입견과 편견에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의 '싸가지"는 과장된 거였다. 누군가  진중권을 '싸가지'라 했고, 그것은 확대 재생산 되어 통념화의 옷을 입는다. 진중권은 지나칠 정도로 날카롭고 명확한 게 문제였다. 다분히 도발적이지만, 예의없는 싸가지는 아니다. 나로선 이번 디워 탐색이 진중권 다시 보기였다.

 

PS3:  디워 광풍의 흔적을 찾으면서 상황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은, 블로거가 몇 있다. 그들이 내게 도움을 주려고 한 건 아니었다. 내가 찾아가서 스스로 그들의 글에서 궁금함을 풀어나간 것이다.  1.이규영의 연예영화 블로그,  2.창천항로,  3.이 시대의 마지막 이야기꾼이 되고픈,  4.허지웅의 블로그,  5.링블로그,  6.How many cuts should I repeat?  이들 블로그는 각각의 다른 색채감이 있다. 그밖에 광풍을 이해하는데 정말 도움을 받은 사이트가 있다. 그것은 패러독스(역설, 이율배반)적인 딜레마(진퇴양난)였다. 바로 '노빠'와 황빠'의 근원지였던 <서프라이즈 데일리>다. 그밖에 변희재와 김휘영의 놀이터는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디빠'였던 '디까'였던, 어찌됐든 간에 똠방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그들이 정말 정말 고맙다. 강호무림은 대단했다.

 

 

PS4 :

 글을 읽은 주변 지인들이 참견을 한다."그 때 없어서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것 같은데, 대단했다. 사이버 테러는 정말 심했지만, 평론가란 지식인 집단이 대중을 자극한 것이다. 김규항의 선빵 예시는 일리 있다."그랬다. 언론에선 사태파악에 대한 그 어떤 노력도 없이 싸움을 지켜보며 중계하는 선정적인 보도태도로 일관했다. 그러기에 김규항의 선빵 예시에 사람들이 속았던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한 블로거가 정리한 사태일지다. 다들 아시겠지만 영화<디워>는 2007년 8월 1일에 개봉했다.그러나 그 광풍은 개봉 이전 부터 있었다. 이송희일과 진중권이 대중을 자극한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을 위해 올린다.  노파심에 말하는데, 아래의 사태일지는 정확한 사실이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 부터 심상치 않은 광풍이 이미 불고 있었다. 그 광풍의 배후는 아직 파악되지 않는다.

 

 

 <디워 광풍 일지>

출처 :블로거 한윤형의 글에서

 

1. 7월21일, 씨네21 김도훈 기자 블로그 폭격


2. 7월 26일, 디워 비판한 이동진 기자 게시판과 그가 출연한 라디오 프로 게시판 털림


3. 씨네21 김도훈 블로그 악플러 쇄도 연이어 남동철 편집장 털림....

   김도훈 블로그에는 망치 들고 회사 앞에서 기다린다고까지 올라옴


4. 심형래에 대해 애정이 듬뿍 담긴 평을 쓴 익스트림무비,

   단지 "B급 괴수 영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해서 해당 포스트 털림


5. 디워를 “B급 아동영화”라고 평한 김세윤 영화평론가가 일하는 직장 홈피 게시판

   (작가로 일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 게시판) 털림, 연이어 필름2.0 게시판 완전 캐털림


6. 7월 30일 디워 단평한 허지웅 기자의 블로그 털림.


7. 7월30일 잠자는 봉준호 공격..


8. 디워 광풍 비판한 허지웅 기자 블로그에서 이글루스 최다 리플 신기록 세우는 쾌거.


9. 허지웅 기자 개인 신상정보가 유출되어 욕설 전화에 시달리는 등

   디빠들의 행패 오프라인까지 확대..


10. 심형래를 비판한 많은 블로그들 디빠들의 악플에 시달리면서 이글루스, 티스토리 등의

   블로거들 사이에 심형래 비판하면 블로그 문 닫는다는 괴담 떠돔.


11. 이런 현상을 보다 못한 이송희일 "막가파식으로 디워를 옹호하는" 디빠들을 비판하자

     홈피 털리고, 디빠들 사회적 소수자(동성애자)에 대한 악질적인 편견까지 악플 테러에 이용


12. 꼭지 돈 진중권 100분 토론 출연, 일본인 부인과 아들에 대한 욕설과 비난은 물론

     신상정보 유출로 욕설전화에 시달림.


13. 진중권이 일하는 중대 게시판 털리고..

     애꿎은 중대는 빗발치는 항의전화로 업무 마비됨


14. 기타 디빠들에게 털려서 악플 도배된 일반인 개인 블로그는 셀 수 없이 많음

 

 

                                                      

똠방: 한윤형의 블르그에서 정리한 한 가지 증언을 덧붙인다. 이렇게 뒤늦게 상황파악을 하고자 하는 것은 주변 지인들이 생각 이상으로 정확한 팩트를 모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실 관계를 정확히 밝히자면, 불과 경력 2년 여의 영화기자가 역시 심형래에 대한  팬심을 바탕에 깔고 썼던 개인 블로그의 리뷰와, 심지어 애정과 아쉬움을 가득 담은 심형래의 오랜 팬인 어느 웹진의 리뷰어가 쓴 리뷰에조차 제목만 읽고 개난장질을 펼친 '선빵'을 시도한 게 바로 그 불특정 네티즌들, 즉 대중이며, 이 시기는 대충 기자시사회가 있었던 <디워> 개봉일 2주 전 월요일 저녁 즈음을 전후로 한다.

 

이후 개봉 때까지 인터넷에는 "디워 씹으면 블로그 닫는다"란 말이 돌았다. 저 개난장질의 1차 피해자에는 기자와 리뷰어뿐 아니라 일반 네티즌까지 포함돼 있었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도 김영진 말대로 아예 <디워>에 대해 언급조차 안 한 채 '개무시'로 일관하고 있었고 언론 기자들은 마치 짜고친 고스톱인 듯 'cg는 훌륭하나 스토리가 좀...' 정도의 하나같이 조심스러운 평들을 썼으며, 영화잡지들은 그저 별점과 그에 따르는 20자평 정도나 싣고 있었을 뿐이다.

 

이동진 정도만이 꽤 쎈 비판을 날렸는데, 이동진이 <용가리>가 개봉할 무렵 지금 <디워>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내세웠던 바로 그 논리로 <용가리>를 적극 옹호하고 지지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완전히 잊혀진지 오래다. (...나는 선빵 중의 선방을 날린 이들의 진짜 정체가 '디워를 열광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들로 위장한 "대기업에 고용된 일종의 작전세력 + <디워>에 투자한 개미투자자들"이 아닐까, 란 의심을 살짝 하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이는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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