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울화병이 도진 듯 싶다.
지난 며칠 그 울화를 누르느라 술을 좀 마셨다.
전방위적인 상황 변화들은 무척 당혹스럽다.
어디서 어디를 막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다.
이럴 때, 개인은 무기력해진다.
이를 악물고 싸움에 나서야하는데,
그냥 혀 속에서만 맴돈다.
지난 밤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맨 정신을 오롯이 세워, 촛불들과 이야기 나눔을 즐겼다.
"그들은 스스로 시민이길 거부하고 있어요.
스스로를 내려 낮은 곳으로 천착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고 있다는 것이죠."
무릅을 쳤다.
30대 후반의 젊은 남성이 한 말이다.
돌아오는 길,
순간 권태가 왔다.
권태는 내게 인도로 가길 종용한다.
이건 사실상의 도피다.
몇년전 글을 뒤져보니,
인도와 권태를 음악과 묶어서 쓴 게 있었다.
음악 바톤 잇기를 통해 쓴 건데,
다시 읽어보니 기분이 묘해진다.
권태 그리고 인도....
음악 바톤 잇기2005/06/26 04:22 in Rapsody in Blue
권태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현대적인 감각이다. 도시가 농촌으로부터 분리되고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도시의 인간들이 일차적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철도와 전화의 등장은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단축시켰는데, 따라서 도시인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상대적 시간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할 일이 없어진 거다. 시간은 많아졌는데 예속된 노동이 없다면 자연스레 일상적 감각에 균열이 생긴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선 관념이 권태라고 하는 작자다. 얼마전 인도에서 돌아왔다. 온지 얼마되지도 않아, 나는 권태를 느낀다. 인도에선 상대적으로 많이 소유하게된 시간을 낭창하게 즐겼는데, 여기선 그렇지 못하다. 권태는 비생산적인 글을 쓰는 것으로 시간을 소비하려 든다. 권태로운 토요일. 그렇게 나는 인터넷을 통해 권태를 씻는 그저그런 글을 쓴다. 그러던 차. 지인의 블로그에서'음악 바톤잇기'란것을 알게됐다. 공교롭게도 다음 바톤 주자로 나를 지목했다. 권태가 흐르는 토요일 초저녁. 내게 놀이가 생긴 것이다. 자. 이제 心님이 내게 던진 바톤을 받고 달려보자.
1. 컴퓨터에 있는 음악파일의 크기 아차차.. 사실 내 컴퓨터엔 음악 파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을 늘 듣는 편이지만 MP3 같은 화일로 음악을 듣지 않는 편이다. 단지 CD로 구할 수 없는 음악을 일시적으로 다운 받은 몇 개 정도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화일의 크기라고 말할 음악이 내 컴퓨터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돌아다니는 것으로 권태를 잊어볼려고 하는 '길바닥 인생'인지라, 무거운 시디와 플리이어보다는 엠피3 화일로 들고 다니는 게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엠피3 플레이어 구입을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2. 최근에 산 CD
라비 샹카르의 초월론적 신비주의와 음악세계는 밥 딜런등의 아티스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비틀즈멤버들을 철학 수업차 모두 인도로 떠나게 했던 사람도 바로 그였다. 듀크 엘링턴, 루이 암스트롱에서 스페인의 저명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의 교분까지 유명한데, 실제로 그는 장르의 벽 없이 모든 음악세계를 남나들었다. 앙드레 프레빈은 런던 심포니와 함께 그의 시타르 협주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영화 `간디(Ghandi)`에서 음악을 맡은 인물로 많이 기억할 것이다. 최근 재즈의 신데렐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노라 존스는 라비 샹카르의 딸이다. 라비 상카르의 음반은 국내에서도 도이치 그라마폰과 EMI를 통해 발매된 게 있기에 구입 가능하다. 특히 EMI를 통해 발매된 음반은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 인도의 전통 음악과의 만남이란 면에서 인도음악에 대한 경험이 없는 이들도 비교적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앙드레 프레빈그리고 주빈 메타와 협연을 한 음반(EMI)은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명반으로 인정 받을 정도다.
공교롭게도 인도와 관련된 우리의 전통가요다. 특별히 듣고 싶어서 일부러 듣는 게 아니라 프리첼에 마련된 내 홈피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링크되어 나오는 음악이다. 지금 내 홈피에 들어간 것은 홈피를 폐쇄하기 위해서다. 관리가 쉽지 않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현인 선생이 부른 "인도의 향불"이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이다.
갠지스강 푸른물에 찰랑 거린다 무릎꿇고 하늘에다 두손비는 인디아 처녀 파고다에 사랑이냐 향불에 노래냐 아~아~ 아아아 깊어가는 인도의 밤이여~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년)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의 회유를 모두 뿌리치고 제3국으로 향했다. 그가 이 땅에서 그토록 찾아 헤맨 ‘광장’은 이념 대립이 숨통을 조이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명준은 인도로 가는 배위에 오른다. 당시 인도는 지적 방황을 하는 이들의 피난처와도 같았다. 오늘은 한국 전쟁 발발 55주년이 되는 날이다. 현대의 우리가 권태감 속에서 인도로의 여행을 꿈꾸는 것 역시 1952년 이 노래가 유행할 수 밖에 없었던 감상적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지 다르다면, 1952년의 고통이 실체적인 반면에 현대의 고통은 권태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이다. 배낭 여행이란 일정 정도의 경제 수준이 되었을 때 이뤄지는 여행 형태다. 4. 즐겨듣는 노래, 혹은 사연이 있는 노래 다섯곡은?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프랑스의 현대작곡가인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들이다. 에릭사티의 곡은 나로 하여금 늘 심연 속으로 가둔다. 그런데 이번 질문은 음악 전체를 두고 묻는 게 아니라, 노래란 장르로 국한됐기에 정확한 답은 아니다. 즐겨 듣는 노래. 한참 동안 생각을 한다. 내가 즐겨 듣는 노래. 만약 질문을 한 사람의 의도가 가요 혹은 미국의 팝 같은 대중적인 노래를 말하는 것이라면 사실 답할 게 없다. 들으면 좋아하는 노래는 있지만 딱히 즐겨 듣는 노래는 없다. 굳이 찾아보자면 장사익의 '봄비'가 그나마 가장 즐겨 듣는 노래일 것 같다. 나는 운 좋게도 사석에서 그가 부르는 노래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최근 5년 동안 가장 많이 찾아서 들은 노래들의 베스트 5는 모두 장사익이 부른 노래들이다. 그리곤 없다. 사연이 있는 노래 다섯곡... 그럴만한 노래는 없다. 단지 자주 부르는 노래 몇 곡 정도 있을 뿐이다. 기분이 우울할 때면 꼭 부르는 노래가 있다. 작자 미상의'친구 3'. 80년 대 변혁을 꿈꾸던 대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불려졌던 곡이다. 특별한 사연은 없다. 단지 가사가 주는 느낌이 좋아서다.
내가 먼저 떠난다 해도 너 만은 초연할 줄 알았다. 너 역시 세상 사는 나그네. 촉촉히 봄비 내리는 곳에 우리를 묻어 달라고 조용히 두 손 모아 빌었다. 하늘 나라 내 님께. 세상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슬픔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하지만 웃어야 웃어야지 웃으며 살아가야지. 나 이제 모든 것 다버리고 나의 길 떠나 가련다. 그리곤 노래방에 어쩌다 가면 조용필의 '킬로만자로의 표범'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죽음의 늪'을 부르곤 한다. 그렇게 부르는 것엔 특별한 이유나 사연은 없다. 단지 노래가 좋다. 가끔은 백발가와 같은 단가 혹은 춘향전 가운데 사랑가를 부르기도 한다. 5. 바톤을 이어받을 다섯분은? 몇 분을 지정할까 싶었는데 대부분 이미 음악 바톤 잇기를 마친 듯 싶어 바톤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이어 달리기는 어디선가 멈추게 되어있다. 그것이 마지막 지점이든 중도 하차던 말이다. 나는 중도하차를 선택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인도에 갑니까?" 그럴 때 마다 나는 대답한다. "권태로워서요. 인도에선 그런 권태를 느낄 틈 조차 없거든요."
내가 느끼는 권태는 지극히 현대적인 감각이다. 권태를 느끼면 여권의 사진은 무척 낯설어진다. 그래서 나는 인도로 가곤 한다. 여행을 유유자적 떠난다는 면에서 보면 이는 부르주와적인 발상처럼 보인다. 하기사 현대적인 감각의 권태란, 사실 알고 보면 먹고 살만해진 인간의 배부른 혹은 도피성 행각일지도 모른다. 인도에선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한국과는 너무도 다르게 나타난다. 권태로운 토요일이었다. 무척 덥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더 더운 나라 인도에서 그 권태를 잊곤 한다. 인도에서 돌아 온지 불과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여전히 인도로 가는 꿈을 꾼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다. 이 글을 다 써가고 있는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은 돌아가신 김대환 선생님의 '흑우'이다. 신나는 북 두드림은 생명의 진동 처럼 나를 울린다.
2005년 6월 25일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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