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동안, 초반의 대부분은 여의도 작업실에 낭창하게 앉아 책을 읽거나 아니면 컴퓨터 앞에서 웹서핑을 하며 강호 무림의 고수들이 써대는 필살비기를 읽느라 보냈다. 그러다가 금요일 부턴 쥐어짜는 에너지를 가지고 상당한 양의 제작 기획서들을 쏟아냈다. 한 개는 실패했고 두 개는 잘빠진 양복 처럼 그럴듯하게 나왔다. 이건 똠방 특유의 자뻑적 평가이다.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다. 내심으론 "이번엔 자신있어. 분명히 될 거야"하지만, 또 한쪽 내심에서 이미 쏟아낸 기획서를 요모조모 살피며 불안해한다. 이미 나온 넘을 가지고 어찌해 볼 도리는 없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자뻑과 자학이 초 단위로 교차하는 지난 밤이었다. 이게 정도가 심해지면 머리에 꽃을 꽂는다.
다행히도 지인들이 여의도 작업실로 찾아주었다. 술 몇잔이 오갔다. 환경운동 연합의 복씨는 수박 큰 덩어리를 냉장고 속에 넣어줬다. 좋아라 하며 박수를 쳐야 하는데, 머리 속에선 "아! 씨불 저넘의 음식 쓰레긴 어찌 처리하나.. 수박 먹으면 방바닥이 끈적이는데 .." 크크... 그러다가 쓰러졌다. 꽤나 지쳤다보다.
한기가 느껴져 일어났다. 새벽 3시인데, 냉방기가 돌고 있다. 방문했던 지인들이 시원하게 자라고 냉방기를 그냥 방기한 채 나갔나보다. "씨불넘들.. 사람 자고 있으면 냉방기라도 꺼 줄 것이지.." 지인들이 언제 나갔는지도 모른다. 지친 잠을 고단하게 잤다. 냉장고 문을 열어 복씨가 넣어준 수박을 먹었다. 달디 달았다. "아.. 이걸 먹으면 안되는데.. 혈당 올라가는데... 씨불씨불씨불" 방을 청소했고, 술잔들을 설겆이 했다.
이미 반텀이 사라진 수박은 온 방을 끈적이게 만들고 있다. 또 씨불 거리며 방을 걸레로 닦는다. "난 몇개 안먹었는데 인간들 먹었으면 흘리지 말고 쳐먹어야지..." 새벽 3시. 전투가 끝난 뒤의 고요함. 그리고 투덜거림... 어제의 그 정신없던 시간들이 주마등 처럼 지난다.
"근데요. 이 예산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요? 여길 보면요. 엑스트라 동원만 200명이예요."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장편 영화 예산은 1억3천만원이다. 해외 올로케이션이다. 시나리오쓰는 작가비주고, 촬영감독을 비롯하여 스텝들 돈 주고, 장비 임차료 주고 시설 사용료 주고, 출연료 정확하고, 물론 이번 영화에 캐스팅될 배우들은 우리가 다 모를 사람들 뿐이다. 그들은 이번에 책정된 출연료에 분명 좋아 할 것이다. 그들 일년 수입을 출연료로 받으니까... "그럼요. 되죠. 하기사 그 예산 속에 우리 인건비(?)는 없지만서도 말이죠. 크크크..." 방송 드라마도 그 예산 가지고 해외 올로케이션은 불가능하단다. 근데 장편 영화를 그 예산으로 하겠다고 하니까 다들 놀란다.
모르겠다. 나름 야심을 가지고 시작한 기획이지만, 또 어떻게 자빠질지 모를 일이다. 100분 정도의 장편 영화를 해외 올로케이션으로 1억 3천만원에 만든다는 게 다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여기는 것 같다. 기획서를 받아 읽는 사람이 "적어도 5억은 들어가겠는데요."한다. "아니예요요. 예산서 잘 보세요. 1억3천만원이에요" "에이 농담하세요? 이 돈으로 시놉시스에 있는 장면들을 촬영할 수 있단 말이죠?" 그들로선 몇몇 장면은 한 장면 촬영하는데 적어도 5천만원은 든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아.. 이 물벽 장면요. 많아야.. 500만원 정도 들 것 같아요.." "현지 물가라든가 현지조사는 한건가요?" "물론 했죠? 여기 제 이력을 보시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제 다큐멘터리가 인도와 같은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소재로 한 것들이예요. 이미 숱한 촬영을 이미 인도에서 해본 경험이 있다는 증거죠." 그래도 그들로선 믿을 수 없다는 는 눈치다.
"글고요. 촬영 장비 목록엔 스테디캠 수중촬영장비, 5.1스테레오 동시녹음이 있는데, 이렇게 하고도 1억3천만원이요?" "제가 거짓말하는 건 결코 아니니까요? 이번 제작 기획서를 잘 검토해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로서도 약 1억 정도만 예산이 더 투입될 수 있다면 날아다니면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예산이 아니라 초저예산 영화란다. 기획 자체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나올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예산 이야기 하다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
그렇게 프리젠테이션을 끝내놓고 여의도 작업실로 왔다. 배가 고팠다. 라면 하나를 끓였다. 몇 젓가락 뜨는데, 지인들이 온 것이다. KBS의 김씨가 냉모밀 국수를 먹자고 했다. 이미 먹고 있는 라면에 더해서 냉모밀도 먹었다. Food채널의 윤씨가 "저러고도 당뇨병 맞어?"한다. 맥주가 왔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왔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고전하고 있는 최씨 선배가 왔다. 그의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 그러다가 쓰러져 잤다. 지난 3일 동안 한 숨도 자지 못했다. 금요일에 잠깐 졸다 꿈속에서 어머니를 뵌 이후로, 조는 것도 없이 열라 제작 기획서를 썼다.
잠시 후면 대구로 간다. 딸 아이를 볼 생각에 걍 콧노래가 나온다. 이번에 작성한 제작 기획서가 현실화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우리 딸 아이 처럼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넘들이다. 딸 아이에게 이번에 쓴 기획서를 읽어주고 싶다. 아빠가 하는 말이 뭔소리인지도 모를 11개월 된 딸 아이다. 그래도 읽어주고 싶다.
새벽 5시의 시간이다. 기차에서 읽을 책을 챙긴다. 피터싱어의 '죽음의 밥상' 대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읽으면 될 것 같다. 더 얇은 두께의 책이 유혹을 한다. 프란츠 알트가 쓴 '생태적 경제기적'이다. '죽음의 밥상'은 기차 안에서 읽기엔 양이 좀 부담스럽긴 하다. '생태적 경제기적'을 집으려는데, '물전쟁'이란 새로운 책이 눈에 들어온다. 반다나 사바가 쓴 책이다. 최근 몇 년동안 반다나 사바의 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이 아줌마에 대해서 갖는 내 개인적인 평가가 아주 젬병이라, '나중에 시간이 남고 남아서 뒹굴뒹굴 뒤집어 질 때' 읽기로 했다. 결국 에상외의 책이 가방에 들어갔다.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일본의 NGO 활동가와 르포라이터가 쓴 책이다. 요즘은 이렇게 무슨무슨 몇가지 방법하며 도식화한 책이 잘팔린단다. 거참..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기분이다. 기차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윽.. 바보.. 기차포 예약을 하지 않았다.. 엥.. 왜 했다고 생각했지? 잠시만, 기차표 예약을 해야겠다. 다다다다... 예약을 했다. 아침 7시에 출발하는 기차다. 8시41분 도착.. KTX도 연착하니까, 그 시간 더하고 글고 택시 타러 나가는 시간, 줄서는 시간 이동시간을 더하면 약 9시 정도 되면, 딸 아이와 만나게 된다.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요즘 아내 얼굴보다는 딸 아이가 떠오르는 게 99%를 차지한다. 아내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난 그래도 1%인데, 아내에게 남편은 0.001.%밖에 안될지도 모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씻질 않았다. 어제 프리젠테이션 할 때, 몸에서 냄새나는 것 같아 무지 신경이 쓰였다. 샤워를 하고 짐 몇개 챙기고 그러면 된다. 어제 전화에서 아내가 뭘 가져 오라고 한 것 같았는데... 몇 가지를 꼭 챙겨오라고 신신당부했던 게 기억이 났다. 근데 그 내용은 생각이 안난다. 출발 하기 전에 전화를 다시 해야겠다.
꿈은 항상은 아니지만 대개가 황당하다. 지금 꾸고 있는 꿈도 황당할까? 나름 아주 현실적인 꿈이라고 여기는데, 이 또한 다른 이들이 보면 황당하다고 여길까? 어제 프리젠테이션에서 그랬다. 그들의 시선에서 "뭐 저런 넘이 다 있어?"싶은 느낌을 꽤 받았다.
사실 어제 똠방이 간 곳은 두 군데다. 하나는 방송관련쪽(여기는 기획서만 달랑놓고 왔다)이고 한 곳은 영화제작에 투자한다는 모모모 기업이다. 하나의 제작 기획서를 가지고 두 군데 넣은 것이다. 밑밥을 여기저기 던지면 어디서 한 넘은 물겠지 하는 덜 떨어진 초보낚시꾼의 심정이다. 하나는 영화로 하나는 방송 드라마로.. 크크크.. 둘 중의 하나는 걸리겠지... 둘다 안될 수도 있고...
아! 씨불.. 방을 닦았는데도 방이 끈적거린다. 아니다. 일주일 동안 씻지도 않은 내 몸이 끈적여서인지도 모른다. 씻어야겠다. 씻다가 꿈 마저 씻겨지면 어쩌지? 괜찮다. 또 새로운 꿈을 꾸면 되니까... 꿈도 자주 꾸다 보면 그게 습관화 되면 그렇게 꿈을 꾸는 자체로도 신이 난다. 헤헤헤헤...
2008년 7월 22일 아침 6시 즈음
여의도 작업실 리마주25에서 똠방이 지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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