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니 밤 12시가 넘었으니 어제라고 하는게 맞을 겁니다.
얼떨결에 글을 쓴게, 성명서가 됐고 그래서 KBS 본관 앞에서 자유발언을 통해 마이크까지 잡았습니다.
KBS 아나운서가 저를 불렀을 땐,
대구에 있는 아내와 그리고 인도에 있는 사람과 전화통화를 하느라 그 소리 마저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곤 다시 제 자리로 왔지요.
후배 독립PD인 정일권씨가 앞에서 저를 불렀다고 말을 전해주더군요.
얼마를 기다리고 제게 마이크가 잡혀졌습니다.
늘 카메라 뒤에 있는 입장이다 보니
앞이 깜깜해지고 덜덜 떨립디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습니다.
천천히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독립PD입니다. 이른바 방송사의 하청업체에서 종사하는 사람이죠.
할말 많은데 이렇게 기회를 주시니 몇 마디 하겠습니다.
아십니까? KBS2TV에서 아침을 여는 세상의 아침, 그리고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VJ특공대, 주주클럽, 인간극장, 수요기획...
이 모든 방송 저 같은 사람들이 만듭니다. 저희들로선 정연주에게 정말 화가 납니다."
그런 다음 제 소개를 잠깐 하고, 준비한 성명서의 일부 발췌를 읽었습니다.
많이 떨리더군요...
대구에 있는 아내와 열흘 뒤면 첫돌을 맞는 딸 아이 얼굴이 그려졌습니다.
40대 중반을 넘어서 얻은 딸 아이인데,
같이 놀아주지도 못하고 아내에게 아이를 맡긴 채
2주째 서울에 올라와 있는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아래는 이미 토요일 밤에 올렸던 글을 정리하여 KBS 앞에서 발표한 독립PD협회의 성명서입니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 상태에서 성명서 낭독은 발췌하여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새장을 박차고 나오자
공영방송 사수와 방송장악 저지는
방송인의 양심입니다.
어떻게 이야길 시작해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상식을 이야기해도 그 상식은 어느덧 도랑물에 빠지고, 대중은 몰상식의 헛된 달콤함을 붙잡을 뿐이니 말입니다. 저희는 방송사의 외주 프로그램을 제작 연출하는 독립PD입니다. 이른바 외주제작이란 환경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PD입니다. 저희는 같은 동료인 독립PD들과 KBS의 정규직 방송 선후배님들에게 할 말이 있어 펜을 들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괴벨스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방송을 정치에 적용해 대중 선동을 했던 최초의 인물이 바로 괴벨스입니다. 독일 국민들에게 라디오를 보급하여 히틀러의 행적 하나 하나를 생중계했지요. 그리고 사상 최초로TV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그것은 국민을 위한 문화 정책이 아니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선전을 위한 미디어의 적극적 활용에 불과했습니다.
괴벨스의 이런 말 하나가 있습니다. "나에게 단 한 줄의 문장을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99개의 거짓말과 1개의 진실 속에서, 처음에는 1개의 진실을 받아들이며 99개의 거짓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99개의 거짓은 양적인 우위 속에서 1개의 진실을 덮어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대중은 진실을 의심하고 결국은 거짓투성이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공영방송 KBS... 여기에 대해선 할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KBS는 과연 공영방송인가? 기계적 중립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KBS는 분명히 공영방송 맞습니다. KBS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방송이라고 말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론권력을 쥔 거대 공룡입니다. 이른바 B급 좌파라고 스스로를 자처하는 김규항은 최근 KBS의 사태에 대해 이런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존중할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시절은 슬프다. 정연주 씨는 미국 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지만 전형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한겨레 시절 조선일보를 맹렬히 공격하곤 했지만 동시에 좌파에게도 그 이상의 혐오를 드러내곤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적절한 사고와 행태 덕에 KBS 사장이 되었는데, 오늘 그가 방송 공공성의 수호자처럼 일컬어지는 건 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이명박이 KBS 사장을 제 사람으로 갈아치우려는 건 참 더러운 일이지만(그러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김대중 노무현이 그랬듯) 착한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고작 정연주 같은 자를 지켜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개인 정연주가 아니라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정연주? 싱거운 소리들 마라.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사람들에겐 KBS가 공영방송인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인민의 처지에서 KBS는 공영방송인 적이 없다. 이를테면, KBS가 FTA나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반대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공영방송이란 ‘사장과 대통령이 사이가 안 좋은 방송’이 아니라, 힘없는 대다수 인민의 편에 서서 자본/지배계급과 긴장을 이루는, 그래서 세상이 힘 있는 자들의 입맛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견제하는 방송이다.
김규항의 이러한 지적에 저희는 십분 동의합니다. 그동안 KBS는 몇몇 프로그램과 보도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자본의 불평등으로 인한 빈부 격차와 같은 문제에 대해 나름 이야길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내부에 의해 자행되는 노동의 불평등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바로 외주제작의 불공정 관행입니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건 둘째 치고 KBS란 조직 내부에서 다소 진보적인 경향을 보이는 인사건 수꼴이건 아니면 여기저기 걸쳐있는 중도파건 이들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이 외주 제작인력의 인권이나 노동 문제에 대해선 철저하게 착취자의 입장이 됩니다.
정연주 사장은 적자 경영의 압박 속에서 내부의 경영문제나 정규직 인건비 문제는 동결 정도에 그쳐, 만만해 보이는 외주제작사의 제작비를 30에서 40%를 삭감했습니다. 그리고 이전부터 관행이었던 갑과 을의 계약관계는 그대로 유지된 채 말입니다. 모든 권리와 의무는 ‘갑’인 방송사가 가져가고 모든 책임은 ‘을’인 외주제작사에게 떠넘기는 불공정 관행은 여전히 당연한 듯 자행됩니다. 그러기에 이른바 '반 정연주'의 최전선에 서야 할 집단은 바로 독립PD입니다.
'정연주 사장 구하기'와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독립PD들로선 구역질 나는 위선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 싸움은 표면적으론 '정연주 일병 구하기'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공영방송 사수'이며 관영방송을 꿈꾸며 KBS를 정권의 나팔수로 만드는 현 정권의 '방송장악 시나리오 박살내기'입니다.
지금 KBS 노조가 '정연주 딜레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싸움의 향방을 잡지 못한 채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컬한 것은 현 KBS 노조는 말로는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며 나름 항거하는 척하나, 그러한 움직임은 현 정권의 방송장악시나리오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 역할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죠. 정황을 읽기 쉽지 않은 대중은 KBS 노조의 움직임을 보며헷갈리게 된다는 것이죠. 친여성향을 보이는 선배 한 분이 얼마 전에 저희에게 이렇게 조언을 한바 있습니다.
"자네가 무슨 일을 하던지 내가 자네를 말릴 순 없다고 본다. 자네의 생각하는 바를 이해 못할 것도 아니고 그 신념을 인정해. 하지만 무슨 싸움을 하던지 간에 두 가지는 빼고 싸움에 임하길 바라네. 하나는 PD 수첩과 관련된 내용, 둘째는 정연주 사장 구하기와 같은 행동 말이지. 이 두 가지만 빼고 자네가 주장을 했으면 좋겠어. 공영방송 사수, 방송장악 음모 저지엔 나도 찬성이야. 두 가지를 뺀다면 말이지."
얼핏 들으면 꽤 그럴듯해 보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차 떼고 포 떼고 장기판 싸움을 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KBS 노조가보여주고 있는 싸움은 바로 차 떼고 포 뗀 장기판 싸움입니다. B급 좌파 김규항의 냉소는 현실적인 인식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이지만, 현 KBS 노조가 벌이는 뻘 짓과 다름없습니다. KBS 노조의 뻘 짓과 같은 '공영방송 사수 그리고 정치 독립적 사장 선임제를 위한 투쟁'은 현 전선을 무기력하게 만들 뿐입니다. 총력전을 펼쳐도 이길까 싶은데, 전선을 분산시켜놓으니 싸움의 주체가 될 이들은 방향성을 잡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저희로선 현KBS 노조의 주장과 싸움 전개에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김규항의 지적엔 십분 공감하지만, 평론가적인 자세로 다분히 냉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현 싸움에 임하는 이들에게 조롱을 날리는 듯한 태도엔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독립PD들에게도 김규항과 같은 냉소주의가 꽤 팽배합니다. 김규항 같은 인물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정연주 사장 체제에 의한 공영방송도 문제 아닌가?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을 새삼스러운 일로 떠드는 것은 코미디다. 초록은 동색이다.' 글쎄요. B급 좌파 김규항에게 초록은 동색일지 모르지만, 방송의 최전선 제작현장에서일하고 있는 독립PD로선 초록은 결코 동색이 아닙니다.
현 정권이 정연주 사장 체제를 내리려고 하는 주장의 근간이 되는 것은 적자경영입니다. 감사원의 주장대로 KBS의 3년 누적 적자가 1,000억이라서 정연주 해임이라면, 같은 공기업인 한전 사장, 산업은행 총재는, 총살감이 됩니다. 그렇다면 한 달 만에 10조원 까먹은 강만수는? 혹은 취임 6개월 만에 성장율 2% 까먹고, 스태그플레이션을 만든 대통령은 무엇인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독립PD는 싫건 좋건 토악질을 하던, ‘정연주 사장 구하기’와 같은 현 싸움의 최전선에 나섭니다. 정확히 말하면 ‘정연주 구하기’가 아니라 ‘공영방송 사수와 방송장악음모저지 항쟁’입니다. 싸움에 나서기로 한 이상, 지금까지 우리를 착취했던 악연은 잠시 접어둬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싸움의 총력을 위해섭니다. 우리의 고통은 정말 크지만, 더 큰 구조적인 고통을 막아내기 위해서 독립PD가 안고 있는 고통은 잠시 접어야 합니다.
8월 11일(월) 한겨레 신문 방송섹션엔 우리의 모금으로 이루어진 5단 광고가 떴습니다. 참 힘들게 모은, 독립PD의 피와 땀이 오롯이 밴 돈으로 만든 광고입니다.
공영방송 사수와 방송장악 저지 투쟁은 이제 우리의 싸움입니다. KBS의 온실 속에서 안이한 먹이에 익숙해진 이들은 그저 달콤한 꿈에 젖어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전념할 뿐입니다. "저들도 싸우지 않는데, 왜 우리가 나서며 싸워야 하는가?"가 아닙니다. 저들이 싸울 생각 조차 없이, 무기력하게 있으니까 우리라도 나서서 싸워야 하는 겁니다.
저희의 표현이 다소 거친 점,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독립PD로선 방송사의 폭력에 의해 가슴에 새겨진 응어리가 썩다 못해 피고름이 되어 흐른 탓입니다. KBS의 울타리에서 달콤한 먹이를 드시며 안이한 꿈을 계시는 인하우스 선후배님들, 새장을 깨고 나오십시오. 어두운 시대의 탄광 속에서 경종을 울리는 카나리아가 됩시다. 그리고 이번 싸움에서 진다하더라도 독립PD들과 함께 당당하게 이명박 정권의 감옥 안에서 만납시다. 역사는 이것을 기억할 겁니다.
2008년 8월 11일
한국독립PD협회 ‘방송장악저지 비상대책 위원회’
158-715 서울 양천구 목동 823-5 한국방송회관 15층 TEL 02-3219-5615 FAX 02-2643-6416
E-mail indiepd@hanmail.net
-----------------------------------------------------------------------------------------------------
여기까지입니다.
시간에 쫒겨 몇군데는 뛰어넘어 읽었습니다.
갑자기 혈당이 떨어집디다.
당뇨가 있습니다. 허리디스크로 왼쪽 다리엔 통증이 왔고요.
천식은 숨 마저 막히게 하더군요.
앞은 아득하고 다리는 휘청거리고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몇 분이 저를 부축해주지 않았다면 그 자리서 쓰러질지도 몰랐죠. 그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여기저기서 인사를 해주시더군요.
사실 전 그분들이 누군지도 잘 모릅니다.
이건 촛불이 가져다준 또 다른 공동체였습니다.
남이면서 결코 남이 아닌....
그런데요...
준비한 이야길 하나 제가 못했습니다.
바로 기륭전자 노동자 이야깁니다.
촛불에 가려 그냥 묻히고 마는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단식만 60일이 넘었고,
싸움을 시작한지 1000일 넘게
힘겨운 단식을 하며 소수의 사람들만 관심을 가진 채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죠.
그분들과 촛불로 연대하자고 이야길 하고 싶었는데,
그만 하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이 얼마나 밉던지..
결국 저 역시 비정규직이라 하나,
방송이란 권력 속에서 안주하고 마는 기득권의 한계란 생각으로
가슴이 그냥 미어지더군요.
촛불을 마치고 골목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더 정신을 차릴 걸...
"나는 당신을 증오한다."
여기서 당신이란 내 안에 있는 기득권입니다.
늘 '연대'를 가슴 속에 담고 있지만,
마이크를 잡았을 땐, 그저 우리들 어려운 이야기만 했습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더 어려운, 아니 절박한 상황인데도 말이죠.
그나마 블로그를 통해서 말씀드립니다.
기륭전자 분들을 기억해 주시길,
함께 나가 싸움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가슴 속에서 기억해주시길..
기억만으로 견디지 못하는 분들은
기륭전지 노동자들에게 달려가
격려해주고 따듯하게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도 함께 할 겁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마음이 가시는 분은
아래의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연대'는 바로 생활 속의 실천입니다.
기륭전자 노조 홈페이지
이만 줄입니다.
서로의 나눔은 아름답습니다.
서로의 기억은 맑은 추억이 됩니다.
하지만 현재 속에서 함께 할 때
우리는 영원한 승리 속에서 살 겁니다.
"연대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
여의도 작업실에서 씁니다.
'他者의 視線'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슬라브예 지젝의 비밀 (1) | 2008/08/21 |
|---|---|
| 올림픽에 묻힌 인도에서 온 소식 (0) | 2008/08/14 |
| 연대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 (0) | 2008/08/12 |
| [닭장차 유람기] 축구를 보던 중 연행되다. (26) | 2008/08/10 |
| 촛불도 한국의 밤문화다. (0) | 2008/07/20 |
|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간 촛불 (0) | 2008/07/20 |



Prev
Rss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