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새벽, 전투하듯이 기획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뭐하셔? 잠깐 내려오셔." 작업실 바로 아래엔 넓은 광장 같은 맥주집이 있다. 그곳은 서여의도에 터를 잡고 일하는 너섬주민들의 목로주점같은 곳이다. 그렇다고해서 서민적인 술집이란 뜻은 아니다. 여의도의 특성상 서민적인 곳은 사실상 없다. 어찌됐든, 서여의도의 목로주점 같은 유럽 어딘가의 시끌벅적한 광장 술집 같은 곳이다. 똠방으로선 엘리베이터만 타면 가볍게 들러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곳이다.
맥주가 거나하게 오가는 실내의 커다란 광장에선 여러 명의 PD들이 떠들고 있었다. 현 정권이 야기한 방송관련 사태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진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술자리가 그렇다. 꽤 진지하다가도 이야기의 흐름은 곁가지로 빠지기 마련이고 종국에 가선 전혀 예상치도 않은 곳으로 흘러간다. 그날도 그랬다. 한 시간 아주 진지했는데, 어쩌다보니 '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날 모인 사람들 중에 결혼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삼십대 중반을 넘었고, 마흔을 이미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여즉 사랑하는 사람 하나 없는 가여운(?) 존재들이었다.
여권에 도장 찍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외국을 자주 나가는 이들이다. 물론 직업상의 이유로 나가는 촬영과 취재다. 그들이 경험한 각 나라의 밤문화가 맥주 안주거리가 됐다. 그렇게 된 게, 독신 남성으로서 겪는 '성'의 고민이 나왔고, 옆 테이블에선 미국인으로 짐작되는 한 무리가 한국의 다이나믹한 '밤문화'를 놓고 신기한 듯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워낙 큰소리로 왁자지껄 떠든 탓에 우리는 모든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엿들을려고 일부러 귀를 기울인게 아니라 그냥 들렸다.
그들이 나눈 한국의 다이나믹한 밤문화 이야기 속에 정말 다양한 것들이 등장했다. 그들이 경험한 것은 한국의 일반적인 보편 상황은 아니다. 그들이 경험한 것은 서울에 국한되어 있었다. 어떤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야기로 봐선 단순한 여행자는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이 가장 놀란 것은 '촛불'이었다. 다시말하지만 그들과 함께 나눈 대화가 아니다. 우리끼리 이야길 나누는 가운데, 왁자지껄 떠드는 그들의 이야길 그냥 건너건너 들은 정도에 불과하다.
'촛불'이 처음부터 그들이 나눈 대화의 주제는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들의 이야기 속에 처음 등장한 한국의 다이나믹한 밤문화는 미국의 어느 신문인가 잡지에서 소개한 기사였던 걸로 기억된다. 한국의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이 많은 10대 도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한국에서 머문 게 꽤 되는 듯 싶었다. 여러가지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토했다. 이태원이 나왔고, 강남이 등장했고, 홍대가 튀어나왔다. 그 다음 이야긴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의 이야긴 어찌됐든 사실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안 듣는 척 귀를 기울였다가,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빤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냥 다시 우리끼리 수다를 떨었다. 우리의 수다 속엔 아직 결혼하지 못한 총각들의 푸념이 있었다. 그 푸념은 옆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미국인 무리가 나누는 대화내용으로 부터 출발한 거였다. 여성분들에겐 미안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한국의 여성들을 향한 거친 공격이 되고 말았다. 술자리에선 자기 성찰을 동반하긴 어렵다. 그냥 직설적이고 현상적인 언어만이 튀어나올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데, 우리의 수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옆 자리의 미국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어느덧 '촛불'로 넘어간 것이다.
한국의 다이나믹한 밤문화 가운데 '촛불'을 빼놓고선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으기 놀랐다. '촛불'이 밤문화라니.. 그들의 이야길 나눈 촛불은 시위문화로서가 아닌 밤을 화려하게 그리고 역동적이게 만드는 한국인들 만의 독특함으로 등장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그들에게서 쏟아졌다.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는 "자발성" "역동" "평화"였다. 함께 그들과 토론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냥 생각에 멈추었다. 그날 우리 일행은 그들의 이야길 간간히 알아듣는 정도의 영어 실력 밖에 갖추지 못한 탓이었다. 그들 나름대로 촛불에 대한 꽤 깊디 깊은 분석도 나왔던 것 같은데, 거기까지 알아듣기 못하는 우리의 영어실력.
이야기는 막바지로 치달았다. 누군가는 이런 촛불이 두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촛불의 전망이 화제에 올랐다. 그들 사이에 뭔가 다시 격론이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허나 단 한마디로 끝났다. "촛불은 분명히 꺼져요. 이번의 경우엔 두달 동안 이어져 온게 무척 놀랍긴 하지만, 한국인들의 특성상 더 이상 가긴 어렵울 겁니다. 그게 한국인의 역동성이 갖는 한계입니다." 여기저기서 "맞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술자리를 끝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가까운 홍대로 가자고 제의를 했다. 거기서 한국의 밤문화를 체험하자고 말이다. 금요일 밤의 홍대, 정확히 말하면 토요일 새벽의 홍대다. 그곳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지 못하는 전혀 다른 그림의 밤문화가 있다. 그들은 그걸 경험하러 갔다.
"근데 홍대 앞이 어떤 정도길래, 이 시간에 저 사람들이 흥분된 기대를 가진 채 홍대에 가는 거죠?"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여의도에서 가까운 홍대이지만, 그날 모였던 이들은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벌어지는 홍대 앞 거리에 대한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아주 다이나믹해. 우리도 함 가볼까?"
취기로 간 홍대는 다이나믹했다. 그것은 욕망의 다이나막이다. 젊고 발랄하다는 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발랄함 속엔 개인의 성적 환타지들이 모여 거대 욕망을 낳고 있었다. 그 욕망은 아주 끈적였다. 그곳에서 사회적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이나막한 한국의 밤문화는 욕망의 거리에서 펼쳐지기도 했지만, 시청앞과 종로에선 촛불이란 형태로 다이나믹하게 펼쳐진다. 우리의 의식은 어디에 가까울까? 홍대 앞 밤문화가 보여주는 다이나믹, 아니면 두 달 이상 이어지는 촛불의 다이나믹. 여의도 술집에서 스치듯 본 외국인들에게 촛불과 홍대 앞의 다이나믹의 차이는 어떻게 비춰질까?
그냥 쓸데없이 끄적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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