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는 진실의 기록이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제다. 하지만 진실에 대한 개념적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할지, 이 부분에서 난감해진다. 사실과 그 이면에 담긴 진실을 카메라로 표현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우리가 하는 작업들은 스토리 라인이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영화적 장치이다. 물론 연출가의 해석에 따른 장치라고 볼 수 도 있지만, 엄밀히 보면 그것은 자연스런 얼굴에 화장을 하는 그래서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포장이다.
자연 미인 혹은 천연미인 이란 말에 우리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 함께 술을 마셨던 모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말이죠.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관음증 같은 맛이 있어요. 날 것 같은 싱싱한 맛. 그래서 전 '인간극장'을 자주 보고 그걸 보면서 내 삶과 방송에 비친 이의 삶을 비교해보곤 해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평론가들 가운데 그는 독보적인 존재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뭔가를 잘못 들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정말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고, 한국 방송 다큐멘터리 가운데'인간극장'을 최고의 흥행작으로 치는 것은 물론이고 다큐멘터리의 전형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KBS의'인간극장'은 무척 존경하는 선배가 프로듀싱을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스탭으로 참여하고 있는 연출자들이나 작가들 역시 개인적 친분이 있는 후배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을 대한민국 방송 다큐멘터리의 표준 혹은 전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흥행작임엔 틀림없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서도 말이다.
"형! 음모이론 아시죠? 외계인 이야긴 사실이예요. 그것이 감춰져 있는 건 거대한 음모가 있어요."
며칠 전 델리에서 만난 여행자 후배가 던진 말이다. 그는 우리에게 외계인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음모에 대해 파고 들어가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걸 만들면 분명 대박이 날거예요. 형은 너무 돈 안되는 것만 만드는 것 같아서요"
그는 요즘 외계인과 UFO에 천착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런 제안을 하게 된 것은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해서겠지만, 무엇보다 늘 돈 안되는 다큐멘터리만 만드는 우리 부부를 걱정하는 그의 따듯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게다.
다큐멘터리는 분명 사실과 진실을 바탕으로 한 영상 기록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들어진 모든 다큐멘터리가 사실과 진실이라고 단언하는 건 위험성이 크다. 엄밀히 말하면 연출자의 의도와 영상 해석에 의한 촬영과 편집이란 과정을 통했을 때, 다큐멘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문제는 그 해석에 당대의 대중들이 동의를 하느냐 공감을 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다큐멘터리들은 당대의 동의와 공감을 충분히 얻지 못했다. 그것은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일전에 아침 방송에 출연해 지금까지 만들어온 다큐멘터리들을 조각내서 소개한 적이 있다. 시청자와 여의도 쪽 사람들의 반응은 무척 컸다.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본질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란 사람이 출연해서 이야기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시청자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의도 쪽 사람들마저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선 어딘지 씁쓸음했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대중 매체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맞는 말이다. 다큐멘터리는 오랜 세월 뒤에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예술작품이 아니다. 당대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하늘을 떠다니는 전파 이상으로서의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게 다큐멘터리다. 여기엔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이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많은 힘을 기울인 것은 영상미다. 그리고 영상 속에서 읽혀지는 사람들의 진심이다. 그러다보니 잔잔한 감동이 그림 속에 담겨져 있긴 하지만, 사람의 눈을 잡아 끄는 힘이 곳곳에서 부족하다. 선정적인 영상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그냥 담담한 영상을 통해 인도인들의 이야길 하고 싶은 생각만 우리에게 있었다.
수많은 미디어와 그 영상 속에서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 이번에 아내(김은정)와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를 시청자들이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건강정보도 없고 아이들 교육문제도 없다. 거기에 우리네 현실 속에서 함께 공감할 만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은 전혀 없다.
어제 여의도 PD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김영미란 이름을 들었다. 그는 내가 아끼는 후배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동원호에 올라 1주일간 그 곳에서 피납된 선원들의 이야길 카메라로 잡아냈다. 그리고 방영 이후 사실과 진실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프리랜서로서 스타급 PD로 떠올랐다.
"형!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 그냥 담담하게 전개하는 영상으로 말이야"
2년 전 여의도의 한 커피숖에서 그가 내게 한 말이다. 당시 그는 SBS의'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이라크 상황을 알림으로써 장안의 화제가 된 여류 PD였다. 이후 그와 연락이 끊어졌고 그의 소식이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피납된 동원호에 올라 이른바 특종이란 것을 건져 그는 위험한 곳을 뛰어드는 분쟁지역 전문 PD로서 스타가 되었다. 그의 이야길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읽으면서 그가 안스럽게 느껴졌다.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토로하던 그는 여전히 도발적인 주제에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취재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 위험한 곳에 어떻게 여자 혼자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여자이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부장제적인 문화가 강한 곳에서 남자 기자나 PD 보다는 여성 PD나 기자가 훨씬 강한 섭외력을 지닐 수 있다. 그걸 김영미 PD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분명 그는 대단한 저널리스트다. 그가 지닌 열정과 끈질긴 취재는 부인 할 수 없다. 인터넷에 오른 기사들을 보면 그가 취재한 내용 보다 여성 PD란 것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는 이혼녀이고 아이의 엄마다. 그런 그가 위험한 곳에 단신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관심 대상이다.
하지만 그가 걱정된다. 어느덧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상 보다는 그의 삶과 내용들이 다큐멘터리 대상이 되어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그것은 글을 조금은 쓸 줄 아는 사연 많은 여성 연예인이 센세이널한 책을 냈을 때 대중들이 쏟는 관심과 유사한 형태로 드러난다. 물론 그 또한 살아가는 방법이며 다큐멘터리를 마케팅 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그는 훌륭한 마케터로 해석할 수 도 있다.
진실이라 하더라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와 주제에 천착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다큐멘터리 연출자로서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본질보다는 자극적인 내용에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본질은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 이상은 안된다.
하지만 우리 또한 다큐멘터리 속에서 일정 장치를 통해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요소들을 배치하는 의도적인 노력을 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4년 전에 방영한"신과 재혼한 여인들"이다. 하리야 데비라는 젊은 여성을 통해 남편을 잃은 인도 여인들의 이야길 전개했다. 그것은 성공적인 장치로 드러났고 당시 여성계를 비롯해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하리야 데비라는 18살의 여인은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리야 데비라는 인물은 분명 사실이었고 진실이었다. 하지만 당시 취재를 했던 우리는 그런 여인을 찾는데만 한 달 이상을 현지에서 소요했다.
이번 50일 동안 촬영한 내용들을 여의도 사무실에서 보면서 영상의 화장이란 것에 다시 한번 생각한다. 캘커타에서 촬영한 영상 속에 우리의 연출의도에 의해 배치된 이른바 아름다운 인물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늙은 인력거꾼들만 나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인생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와 달리 뭄바이에서 촬영한 인도 영화 이야기에선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 끌 수 있는 장치들이 몇몇 나온다. 21살의 어여쁜 배우 지망생 그리고 이룰 수 없는 배우의 꿈을 꾸는 짜이(인도식 밀크티)집 소녀 등등. 사실과 진실 속에서 일정 화장을 한 셈이다.
다큐멘터리는 무엇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명제다.
2006년 8월2일 새벽 2시 56분 즈음
여의도에서 똠방(이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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