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조페의 "시티오브조이"를 본 게 10년이 족히 넘은 것 같다. 앞서의 전작인 "킬링필드"와 "미션"이 안겨다 준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난 뒤, 지인들과 상당한 논쟁을 펼쳤던 게 기억난다. 모두 훌륭한 영화임엔 틀림없지만,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묘한 감동(훗날 나는 이 감동을 싸구려 감동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그리고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가슴을 콕콕 찔렀던 영화였다. 그것은 서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유럽계 백인의 시각 때문이었다.
크메르의 비극(킬링필드), 남미 원주민의 비극(미션) 그리고 인도 캘커타의 가난한 사람들의 고난과 희망(시티오브조이) 등등. 스크린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은 현지인들임에 틀림없는데, 어느덧 그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극소수의 백인에 의해 타자화 된다. 물론 이야기의 서술자가 유럽계 백인들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들 백인들은 단순한 관찰자 혹은 서술자가 아니라 그들의 운명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주도하는 형태로 등장한다.
롤랑 조페의 특유의 현장감 넘치는 휴머니즘적 영상을 좋아하면서도 이런 점 때문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팬 정도로 남게 됐다. 영상 미학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롤랑 조페의 연출력은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 담긴 히든 아젠더(숨은 의도)를 보면, 가끔은 구토를 일으키곤 한다.
영상은 연출자의 의도가 담겨져 있기 마련이다. 순수한 객관성이란 픽션을 다룬 영상이건 논픽션을 다룬 영상이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캘커타의 인력거꾼 이야기(사실은 인력거꾼의 이야기를 타자화 시킨 미국인 의사의 고민을 담은 영화라는 게 정확하지 않나 싶다)를 다룬 롤랑 조페의 <시티오브조이>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도미니크 라피에르의 소설을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작가의 취재가 분명히 담겨진 소설임엔 틀림없다. 도미니크 라피에르는 오랫동안 캘커타에 머물렀고 여행자들의 거리인 서더스트리트의 호텔 페어른에 머물면서 소설을 썼다. 영화 속에서도 맥스(패트릭 스웨이지)가 머물었던 호텔이 실제로 존재하는 페어른 호텔이다. 지금도 그 호텔엔 영화 촬영을 위해 쓰여졌던 방과 도미니끄 라피에르가 소설을 썼던 방이 기념처럼 남아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난드 나가르'(기쁨의 도시는 힌디어의 '아난드 나가르'를 직역한 것이다)는 캘커타 곳곳에 있는 슬럼의 한 예다. 영화 속의 '아난드 나가르'는 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셋트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도라는 땅을 다니면서 보게 되는 슬럼은 영화 속 풍경과 같을까? 아니다. 실제의 풍경은 영화속 슬럼(아난드 나가르 : 기쁨의 도시)보다 끔찍하다. 극 영화는 사실을 전할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작가 혹은 연출자의 의도에 의해 일정 부분을 취한 상태에서 미쟝센으로서 현장이 표현되기 마련이다.
"부담되지 않으세요? 이미 제작된 대작 때문에 말이죠?"처음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2008년에 방송될 HD 다큐멘터리 6부작 제작회의에서 만난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내게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무슨 부담이요? 이미 제작된 대작이라뇨?" 나로선 회의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아.. 이번에 촬영한 내용이 캘커타의 인력거꾼 이야기라면서요. 그건 롤랑조페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던 내용이잖아요"
캘커타의 인력거꾼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고 할 때 부터 주변에서 나오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시티오브조이>였다. 이것은 3년 전 마더 테레사 수녀가 설립한 빈민구호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여행자들의 이야길 다룬 <캘커타에서 만난 천사들>을 제작할 당시에도 같았다. 스테레오 타입으로 캘커타는 <시티오브조이>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부담은 전혀 없어요. 일단 <시티오브조이>는 극영화로 허구잖아요." 지금 제작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귀향>은 다큐멘터리다. 그러나 극영화적인 영상을 중심으로 표현된 다큐멘터리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2명과 보조자 역할을 하는 2명은 이미 오래전 부터 알던 사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잘 알던 사이라기 보다는 5~6년 전 부터 "언젠가는 저 양반들의 이야길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지"하고 점찍었던 인물들 가운데 몇 사람이다.
<시티오브조이>의 인도인 주인공인 하사리는 캘커타가 속한 웨스트 뱅갈 주의 서쪽에 있는 비하르 주 출신으로 등장한다. 그의 가족은 가뭄으로 인해 농사가 망쳐질 지경에 이르자 먹고 살기 위해 대도시인 캘커타로 가족을 이끌고 이주를 하게 된다. 그는 인도의 지배적인 종교를 믿는 힌두교도다.
이와 달리 <아주 오랜된 귀향>에 등장하는 샬림과 후세인은 무술림(이슬람 신도)이며 가족은 고향 비하르에 남겨 둔 채 캘커타에서 인력거를 끄는 노동자다. 캘커타의 인력거꾼들의 상당수는 무술림이다. 그들 가운데 또 많이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비하르 사람들이며 그들 비하르 출신 인력거꾼 들 가운데 반 이상은 비하르 주의 북부에 있는 네팔 국경 인접 지역 모띠하리 출신이다.
영화와 달리 캘커타의 인력거꾼들 대부분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이주 노동자들이다. 인도의 대도시엔 이런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돈을 벌기 위해 이산 가족이 되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 그나마 그들은 어찌보면 노동의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로 인도의 거리에서 만나는 거지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영화 <시티오브조이>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소카의 아버지인 기탁(영화에서 대부로 지칭된다)이 맥스에게 말하는 장면인데,"오히려 많이 가진 사람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다루기가 쉬워. 저항할 줄 모르거든. 그런데 약간 가진 사람은 쉽지 않아. 그나마 가진 게 있기에 그것 때문에 저항이란 걸 하거든"정확히 기억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대충 언급한 내용을 대부는 맥스에게 말한다..
<시티오브조이>에서 인력거꾼은 아주 가난한 이를테면 인도의 절대 극빈층으로 표현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들은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 가난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처참한 현실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인도인구 11억 가운데 30%에 가까운 3억이 넘는 절대 극빈자이다. 그들 3억의 인구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도의 절대 빈곤 속에 노출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노동의 의욕을 거의 보이지 않으며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런면에서 인력거꾼은 삶의 의지를 현실 속에서 바꿔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시티오브조이>에서 인력거꾼 되기가 쉽지 않은 것 처럼 표현된다. 그런데 하려고만 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게 인력거꾼이다. 캘커타엔 우리네 택시회사와 같은 형태로 인력거 회사가 백여개가 넘는다.
인력거를 끌고 싶은 사람은 약간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하루 임대료 20루피(한화440원)만 내면 일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실제 수요 이상으로 캘커타의 인력거는 공급 과잉을 불러 일으킨다. 정확한 통계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캘커타 시청에서 인정한 인력거는 6천대다. 그런데 실제로 캘커타를 돌아다니는 인력거는 10만 대 정도로 추정된다. 1대의 허가된 인력거 고유 번호를 복사하여 위장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인력거는 그 15배가 넘는다. 즉 같은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인력거가 15대란 이야기다.
이들 10만 여명의 인력거꾼의 한 달 평균 수입을 산출하기란 어렵다. 개인 차가 심하다.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샬림의 경우에 인력거 임대비용과 자신의 생활비를 제외하고 나면, 한달에 2천5백루피(한화 5만5천원) 정도를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낸다. 샬림의 경우는 서더스트리트에서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아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시티오브조이>의 주인공은 가족과 함께 캘커타로 이주를 한다. 그리고 그들 가족은 처음에 사기를 당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형태를 갖춘 주거 공간에서 거주한다. 그런데 실제는 많이 다르다. 캘커타의 인력거꾼들 대부분은 거리에서 잔다. 가족은 거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고향집에서 따로 산다. 영화 속에서 처럼 가족과 함께 살며 인력거를 모는 인도인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렇다고 인력거꾼들이 항상 거리에서 자는 것만은 아니다.
이들의 주거 형태를 보면 표면적으로 노숙이지만, 사실 벽과 천정이 있는 방이 따로 있다. 약 2평 정도의 방을 8명에서 10명 정도가 함께 공유한다. 한 달 방세는 약 8백루피(한화1만8천원)로 일인당 80에서 100루피 정도다. 이렇게 함께 세를 든 방에 각자 개인의 짐과 옷가지등을 보관하다가 거리에서 자기 힘든 상황이 되거나 몸이 불편할 땐 인력거를 회사에 반납하고 방에서 일정 기간 거주하기도 한다.
이들 인력거꾼이 고향을 등지고 캘커타로 오는 것은 그들의 출신지인 비하르가 갖는 특수성이 한 몫을 한다. 인도 곳곳을 다녀 본 이들은 알 것이다. 인도의 대도시 어디를 가든 택시 기사라든가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 기사, 그리고 온갖 궂은 일을 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비하르 출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구 1억 2천만명이나 되는 비하르주는 봉건적인 토지 소유 형태가 유난히 강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은 대지주이고, 대부분의 농부는 소작농이다. 이들 소작의 형태는 심한 경우엔 수확량의 70%를 지주가 갖고 30%를 경작자가 갖는다. 인심이 후한 지주라 하더라도 그 배분률은 50대 50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소작농이라 하더라도 그들 가족이 모든 것을 직접 농사를 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인도에는 임금농업노동자인 계층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불가촉 천민들로 일당을 받고 농사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비하르의 경우 이들의 하루 임금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는데, 적게는 20루피(한화 420원) 많게는 50루피(1천1백원)를 받는다.
다큐멘터리 <아주 오래된 귀향>에 등장하는 샬림은 자신의 고향에서 소작농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불가촉 천민 노동자를 부리는 사용자이기도 하다. 샬림은 분명 가난한 사람이다. 그 이면을 보면 그는 비록 인력거를 끌며 거리에서 잠자는 도시 노동자면서 소작농이긴 하지만, 인도에서 약간 가진 사람에 해당된다. 바로 영화 <시티오브조이>에서 대부라고 불리는 기탁이 미국인 맥스에게 한 말에 등장하는 다루기 어려운 '약간 가진 사람'의 전형이다.
영화 <시티오브조이>에서 인도인 주인공 하사리가 폭력조직과 같은 아쇼카 일당에거 저항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저항할 줄 아는 '약간 가진 사람'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인도인은 11억 인구 가운데 약 25%에 해당되는 불가촉 천민과 5%에 해당되는 소수 부족민이다. 모두 합치면 30%가 된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절대 극빈층에 속하지 않는다. 이들 가운데 극히 일부는 인도의 직업예약 및 세습인 '레저베이션제도'의 혜택을 받는다. 인도 정부는 마이너리티인 불가촉 천민을 위해 할당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비율은 10%에서 15%에 이른다. 예를 들면 의대를 진학 하는 데 있어서 10% 정도는 불가촉 천민을 위해 할당한다. 또한 공무원의 일부와 의회 의석의 일정량을 천민들에게 할당된다.
그렇다면 의무적 할당 제도가 모든 천민들에게 해당될까. 그렇진 않다. 참고로 천민들 가운데 의대를 진학할 정도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층은 천민의 1%도 되지 않는다. 그 1%가 10%의 혜택을 장악하고 있다.
천민 가운데 99%는 교욱의 기회조차 받지 못하며, 직업 선택의 자유조차 누리지 못한다. 그것인 법적인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의 전통적 관습 탓이다. 우리식 대로 생각을 하자면 하루 20에서 50루피를 일당으로 받는 천민 노동자가 캘커타로 가서 인력거를 끌면 경제적인 이득이 있지 않을까 싶을게다. 하지만 이것은 인도문화와 종교적 관습의 배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의 순진한 생각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천민들은 그런 생각 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게 종교적인 세뇌를 받아왔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도 종교의 업보(까르마) 논리다.
영화 <시티오브조이>에선 맥스의 영향으로 인해 하사리가 저항하는 것 처럼 표현된다. 영화에서 미국인 의사 맥스는 고질적인 인도 사회에 저항을 부추기는 정의로운 인물로 나온다. 단언하건데, 그것은 인도사회를 단순화 시킨 영화적 장치에 불과하다. 또한 유럽계 백인들이 갖는 오리엔탈리즘의 또 다른 변형이다.
"고난 속에 기쁨이 있다."영화 <시티오브조이>에서 자막으로 나온 마지막 대사다. 아포리즘적인 깨달음이 담겨진 한 마디. 그냥 저 한마디로만 본다면 그것은 인도를 다니면서 외국인이 깨닫게 되는 가르침일 것이다. 길거리의 가난한 인력거꾼에게서 배우는 인생철학인 셈이다.
인터넷 상에서 퍼져 있는 <시티오브조이>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이 문귀는 내가 쓴 글에도 몇 번 등장한다. "삶의 방식엔 세 가지 선택이 있어. 도망치거나 방관하거나 부딪쳐 보거나!"미국인 의사 맥스에게 간호사 조안이 던진 말이다. 이 말은 현실 도피 차원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인도로 온 맥스에게 한 말이지만 동시에 인도의 마이너리티에게 던지는 말이 되기도 한다.
맥스는 인도라는 현실 속에서 부딪쳐 인도인들과 함께 부조리에 저항한다. 인력거꾼인 하사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가난한 고향 땅에서 가뭄을 피해 캘커타로 도망을 왔다. 그리고 캘커타에서 마주친 부조리에 방관을 한다. 그러다가 맥스의 영향을 받고 부딪친다.
그러나 영화를 다시 잘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영화의 끝에 가서 하사리는 인력거꾼 일을 잃는다. 그러다가 기쁨의 도시(빈민가) 사람들의 도움으로 새 인력거를 선물 받는다. 그런데 그 인력거로 일을 하지만 대부의 영역과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자 대부 기탁에게 간청을 하러 갈, 요량으로 대부의 집에 간다. 그런데 대부는 병원에 실려간다.
대부의 집에 도착했을 때, 대부의 아들 아쇼카가 행한 부당함에 이미 저항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력거꾼 노조원들이다. 대부 대신 실권을 장악한 아쇼카가 인력거 임대료를 올렸기 때문이다. 맥스가 없더라도 인도인들은 이미 저항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나마 저항이란 것을 할 줄 아는 '약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선동하는 사람이 말한다. "대부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권위는 나름대로 정의가 있었는데 아들이란 새 체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부의 아들 아쇼카가 소리친다. 인력거의 운영비가 많이 든다. 무턱대고 임대료를 올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그런 다음 그는 최후의 통첩을 시위를 하는 인력거 노조원들에게 던진다. "일하기 싫은 사람은 인력거를 반납하고, 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지금 당장 여기를 떠나라" 사람들이 동요한다. 그 때 나타난 사람이 하사리다. 마이크를 붙잡고 그는 노조원을 선동한다. "이 사람(아쇼카)이 우리 아들을 죽이려 했어요" 그런 다음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된다. 그 재판에서 정의는 살아난다. (영화에서 재판은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실 속의 인도에서 재판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싸움이 된다)
이 장면을 이해하려면 인도의 노조제도를 이해해야만 가능하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인도는 상상 이상으로 노조 제도가 발달한 나라다. 그런데 인도의 노조를 우리 식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철저한 집단 이기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게 인도의 노조다. 이 부분은 아주 설명이 복잡하므로 생략하기로 하겠다.
본래 이런 이야길 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자판기 두드리는 대로 글을 써나가다보니 본래의 의도와 달리 글이 옆길로 많이 샜다.
"고난 속에 기쁨이 있다"짧은 한마디지만 귀에 정말 잘 들어오는 명문이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 그나마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약간 가진 자"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도의 11억 인구 가운데 고난과 기쁨이 아예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3억명 가까이 있다. 그들에 비해 영화 <시티오브조이>의 주인공 하사리와 이번 다큐멘터리 <아주 오래된 귀향>의 주인공 샬림은 우리 눈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인도에선 분명 '약간 가진 사람들'이 된다.
인도인의 시각으로 캘커타의 인력거꾼 이야길 영상에 담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촬영과 편집이란 과정은 다시 연출자의 시각에 의해 걸러진다. 극영화 <시티오브조이>가 인도 캘커타의 인력거꾼 이야기 모두를 할 수 없듯이 다큐멘터리 <아주 오래된 귀향>속에서도 모든 이야길 다 할 수 없다.
롤랑조페 감독의 <시티오브조이>를 본 것은 내가 인도에 가기 전이었다. 그러나 인도를 몇번 들락날락 하면서 내 기억 속에서 <시티오브조이>는 아주 불편한 영화가 됐다. 그렇다면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캘커타의가난한 사람들인 인력거꾼의이야길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 출발은 분명 인도인의 시각에서 보자지만, 실제 그것이 가능할까...
벌써 2주째 편집기 앞에 앉아 있지만 편집이 진행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미 시사회 일정은 지난 월요일이었는데, 그래서 시사회는 연기된 상태 속에서 여전히 편집기는 먹통이다. 인도라는 나라의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관습을 하나 둘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인도를 영상으로 그려내기가 점차 어려워진다. 모르면 용감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알고 있기에 소심해진다.
글쎄, 이것을 "고난 속에 기쁨이 있다"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 나는 그 기쁨을 얻기 위해 편집기 앞에서 멍청하게 앉아 있는 고난을 2주 째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부담되지 않으세요? 이미 제작된 대작 때문에 말이죠?"열흘전, 다른 다큐멘터리 기획회의에서 모 감독이 내게 던진말이다. <시티오브조이>를 염두에 두고 내게 던진 질문이다. 당시에 나는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답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부메랑으로 내게 날아오고 있다. 1만톤의 무게감으로 말이다. 내가 허구라고 말했던 롤랑조페의 <시티오브조이>를 다큐멘터리 <아주 오래된 귀향>에서 넘을 수 있을까?
<시티오브조이>의 원작자 도미니크 라피에르의 명함에 이런 문귀가 쓰여져 있다. "주지 못한 것은 모두 잃은 것이다 (All that is not given is lost)"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말이다. 도미니크 라피에르는 인도에서 경험한 것을 통해 소설 <시티오브조이 : 아난드 나가르>를 썼다. 이후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다. 캘커타 인력거꾼의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아주 오래된 귀향>에서 나는 무엇을 주지 않았기에 이토록 시간을 잃어가고 있는것인가?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슬픈 인력거.
2006년 8월 13일 여의도 작업실에서 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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